“장애인도서관의 새로운 한 획을 긋다!“
“장애인도서관의 새로운 한 획을 긋다!“
[인터뷰] 국립장애인도서관 정기애 관장
국립장애인도서관, 6월 4일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직속 1차 도서관으로 승격
비하인드 스토리는? 예산ㆍ인력 확보 시급... "높아지는 위상에 무거운 어깨“
시각장애인 대체자료 전환 1%... '저작권법' 등 정보 접근 막는 법안 개정되야
언젠가 독립된 공간으로... 열람실 확대, 독서클럽ㆍ공연 등 문화 공간 필요
박지원 기자
6월 4일부터 국립장애인도서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직속 1차 도서관으로 승격된다. 정기애 관장을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두꺼운 안경과 펼쳐진 책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 공익 광고의 한 장면이 그려지는 건 기자의 편견일까. 도서관 관장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전화선 너머 들렸던 지적인 음성이 떠올랐다. 사서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책 많이 읽으세요?“같은 뻔한 질문은 하면 안 되는데... 문이 열리자 눈앞엔 소녀같이 수줍게 미소를 띈 정기애 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6월 4일부터 국립장애인도서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직속 1차 도서관으로 승격된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쁜 날이 아닌가. 그러나 더해진 왕관의 무게만큼, 어깨의 짐도 한층 무거워졌다.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예산 문제부터 풀어가야 할 실타래들이 잔뜩 놓여 있다. 임기 1년을 남기고 장애인도서관 역사의 한 획을 긋기 직전, 그 시작점에 서 있는 그녀를 만나봤다.
1. 축하드립니다 관장님. 1차 도서관 승격을 해내셨어요. 여기까지 오는데 숱한 논의와 시도들이 있었을 텐데요.
네. 맞아요. 가장 큰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예산’이에요. 예산 확보를 위한 처절한 투쟁의 시간이었죠. 저희 도서관 사업의 80%를 차지하는 게 ‘대체자료' 제작이에요. 서적을 시ㆍ청각장애인이 보고 들을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걸 말해요.
시각장애인은 ‘데이지포맷’이라는 음성자료나 점자도서를 보고, 청각장애인은 화면해설자료 등이 필요한데, 이런 대체 자료를 도맡아 생산하는 곳이 저희뿐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장애인정보센터의 개념으로 설립됐다가, 점점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정보격차가 심해지면서 기존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데에 공감을 얻어서 논의를 시작하게 됐어요.
2. 대체자료 제작에 도서관 운영까지...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예산 편성 규모가 어떤가요?
장애인 복지 예산이 2조6천억이에요. 저희는 60억 조금 넘게 받아요. 그런데 장애인 체육복지 예산은 1천억이 넘거든요? 정보복지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죠. 우리 기관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장애인 대체자료 제작 기준을 만들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인데 예산 격차가 심해요.
또 지금까지 국립중앙도서관(이하 국립도서관) 소속 하에 있다 보니, 쪼개고 쪼개서 겨우 예산을 받는 구조라서 “예산 증액해주세요”하고 쫓아다니면 정작 국립도서관 예산이 줄어드는... 본의 아닌 피해가 되구요. 고차원적인 접근보다는 말 그대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원초적인 접근으로 시작한 문제에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3. 1차 도서관 승격으로 기존 사업도 확대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네. 어깨가 무겁네요.(웃음) 먼저는 도서관의 ‘권위’가 상승되죠. 일례로 대체 자료를 제작할 때 공통적인 기준이 필요한데, 복지관이나 대학교 장애인지원센터도 대체자료를 만들지만 기준이 다 제각각이에요. 제작 표준을 만들고 그에 맞춰서 일을 할 수 있게 제시하는 데는 도서관의 위상도 중요하죠.
교육도 마찬가지에요. 비장애인들은 정보 가독 능력이 좋지만, 시ㆍ청각장애인은 대체 자료가 주어져도 읽을 수 있게 따로 연습을 해야 돼요. 대부분 청각장애인은 교육만 잘 받으면, 일반 텍스트도 잘 읽을 것이라 보지만 전혀 아니에요. 수어가 그 분들의 언어잖아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텍스트 훈련도 받아야 되는데, 교육 기회가 잘 없거든요.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급하려면 정부 부처와의 협력이 아주 중요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2차 소속기관으로 있었다보니 한계가 있었어요. 또 1차 소속기관으로 가야한다는 명분으로도 잘 작용했구요.
4. 하루에도 수많은 서적들을 대체자료로 전환하는데, 제작 비율과 보급 현황은 어떤가요?
현재 대체자료 제작 비율은 일반 출판물의 10~13%까지 올라갔어요. 그런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전환 비율은 1%밖에 안돼요. 시각장애인은 10권 중에 1권만 볼 수 있다는 말이에요. 혹자는 전자출판물(e-book)은 보이스 기능이 되니까, 접근이 용이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것도 오해입니다. 저희 쪽에 요청하는 자료는 대부분 어려운 서적이에요. 그래프나 사진 등 음성으로 해석하기 난해한 것들이 많죠. 특히 전자출판물은 페이지 넘김 기능이나 표준 요건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많아서 저희가 다시 손 볼 때가 많아요. 전환 과정에서는 비용이 또 발생하구요.
애초에 출판사들이 장애인 접근성을 반영해서 출판하면 좋겠지만, 10~12%의 비용을 부담해야하니 쉽지가 않아요. 정부가 온라인 서적에 BF편의를 의무화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대책이 필요한데, 이것도 역시 2차 기관으로서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구요.
5. 대체자료를 제작하려면 저작권 등 예민한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대체자료 전환 비율이 낮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출판물이나 영화같은 영상물을 대체자료로 전환할 때 출판사와 저자 입장에선 부담이잖아요. 특히 시각장애인 음성자료(데이지포맷)를 만들려면 텍스트로 작업해야하는데, 파일이 유출되기라도 하면... 청각장애인 해설자료화면 등 BF(베리어프리) 영상물도 유출 위험 때문에 못 만들고 있어요.
화면해설자료 제작을 원천적으로 막지만 말고 저렴한 비용을 받고서라도 시기가 지난 영상물부터 제작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요즘 소프트웨어 보완기능도 좋아졌고, 여러 단서조항도 달아보지만 아직 신뢰가 부족한 탓인지, 호의적이진 않네요. 상업적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주에서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 「국가정보화 기본법」, 출판물에 관한 법령 등 법안 개정에 힘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