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공정무역마을에 사시나요?] 공정무역도시 성동에 숨쉬는 공정무역 커뮤니티 세 곳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소비하는 음식과 물건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가를 받고 생산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물건이 여러 가공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기사를 통해 특정 기업의 부당한 대우, 위험한 노동 환경 등을 접할 뿐입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가 누구인지 알고, 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공정한 대가를 받으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가도록 지지하는 운동입니다. 최근, 다양한 도시, 학교, 기업, 기관 등이 공정무역을 지지하며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 기사는 한국의 공정무역마을과 공정무역 공동체 사례를 통해, 소비자 공동체와 생산자가 어떻게 연대하는지 소개하려 합니다.
"가장 새롭고 민감한 트렌드가 소개되고 소비되는 지역, 좀 더 깨어있는 분들이 찾아와주다 보니까 작은 규모의 기업가 정신 같은 걸 발휘하기가 되게 좋은 거 같더라고요. 성동구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환영하는, 열려있고 다양한 문화가 있어서 너무 재밌는 플랫폼이예요." 리프레쉬먼트 김지열 대표
2019년 '공정무역 자치구 추진'을 선언한 서울시 성동구는 2021년 '공정무역도시' 인증을 받았다. 이후 1차 재인증에 이어 2025년 2차 재인증을 앞두고 있다. 핫플레이스와 사회혁신 기업들의 성지를 품고 있는 성동구에서 골목 안 깊숙이 자리 잡은 공정무역커뮤니티들을 만났다. 금호동, 마장동, 그리고 성수동. 동네 풍경이 확연히 다른 공간을 중심으로 공정무역의 가치와 열정을 알리고 있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브런치카페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여행으로 만나는 공정무역 '사계절 공정여행'
금호동 전통 시장과 주택, 상가들이 모여 있는 언덕길에 새롭게 마련한 카페 겸 사무실로 백영화 대표를 찾아갔다. 오래된 건물과 도로 뒤편으로는 높게 올라간 아파트 단지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신구의 대비가 느껴지는 동네다. 최근까지 포장마차가 입점해 있던 공간을 3명의 멤버들이 직접 수리하고 꾸며 공정무역 제품도 판매하고 여행사 업무도 보는 곳이다. 인근에 지역 토박이 주민들이나 작은 규모로 점포를 운영하거나 시장에서 장사하며 살아가는 소상공인들이 많다. 업무 시간 이후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을 개방하여 계모임으로 마을 사랑방으로 이용된다. 활짝 열어젖힌 문, 오르막길을 지나다 한숨 쉬며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는 자리가 사무실 안팎에 놓여 있다.
"공정무역이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 안에서 잠깐의 쉼의 시간이라든가 이런 동네 곳곳에 같이 녹여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소소하게 주민들한테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 그런 공간에서 진짜 한번 실천해보자 싶어 제 고향이기도 한 금호동으로 왔어요. 여기 넘어가면 응봉동, 옥수동이 있고 성동구 내에 17개 동이 있어요. 거기 갔더니 스토리 있는 제품들이 있는데 그게 공정무역이란다. 코끼리똥종이를 우리나라 한지처럼 사용하더라... 작은 공간이지만 이렇게 마을여행의 거점으로, 외부 여행자에게는 쉼터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 사계절 공정여행 백영화 대표
백 대표는 결혼 후 양평에 살면서 팔당두레생협의 민중교역으로 공정무역을 처음 알게 됐다. 2015년 성동구 공정여행 양성과정을 통해 사업단을 꾸려, 성수동 인근의 사회적경제 둘레길, 공정무역 스티커 투어 등을 테마로 마을 여행을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다. 공정여행자들은 동티모르 커피, 과테말라 걱정인형 등 공정무역 생산지와 제품을 매칭하는 게임을 하고 성동구 내에 해당 제품 판매처를 찾아가 물품을 확인한다. 초등학생들의 교육 프로그램에는 코끼리똥종이로 카드나 책갈피, '나만의 다이어리 꾸미기' 등 손으로 직접 만드는 체험 활동을 진행한다. 공정무역 10원칙 스티커가 부착된 비석치기 놀이는 '공정으로 깨트리는 불공정'의 의미를 담았다. 참여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재미 요소가 가미된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중공업지대였던 과거 성동구의 근현대 건축물을 연결하여 벽돌과 시멘트 등 외형적인 건물 특징들을 테마로 하는 ‘시멘트 커넥트 투어’가 있다. 공학으로 유명한 한양대학교 박물관과 제휴를 맺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다양한 장소와 대학 내로 이끈다. 영유아, 장애인, 고령자, 외국인 등 모든 계층이 여행에 제약받지 않도록 무장애 여행코스를 운영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지 3년 차인 2024년 사회적가치 창출을 인정받아 우수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는 중요한 때마다 함께 하고 어려운 때 도움을 아끼지 않는 10여 명의 든든한 워킹그룹 멤버들이 있다.
성동구 공정무역 페스티벌, 마을 축제에 꾸준히 참여하는 사계절 공정여행은 목표 중 하나는, 동네에서 축제를 열어 주민들과 즐기면서 공정무역 생산자들을 랜선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실시간 축제 현장도 보여주고 코끼리똥종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국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서로의 이야기와 삶을 나누는 상상을 한다.
다양한 가치를 만드는 주민들의 실험공간, 마을카페 '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킨다(이하 못나숲)'
마장동 골목 안쪽에 위치한 '못나숲'은 그냥 카페가 아니다. 친환경 카페, 제로웨이스트숍, 마을 부엌, 수공예 공방을 품은 복합 공간이다. 엄마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 주체를 찾고자 하는 멤버들이 만든 어바웃엠협동조합(이하 어바웃엠)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나서 조합원들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마을공동체 사업으로서 도서관 만들기였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사교육이 활성화된 지역으로 떠나는 일이 많았는데, 부모들과 아이들 모두 삶의 터전과 친구들을 잃게 되는 상황이 생겨났다. 그 대안으로 아이들과 지역주민 모두에게 좋은 교육 환경과 문화생활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인 도서관 설립을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 지원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결국 조합원들이 출자금을 마련하여 마을카페 못나숲이 탄생했다.
못나숲에서는 조합원들의 다양한 재능을 살려 건강한 먹거리로 아이들, 어르신, 취약계층을 위한 쿠킹 클래스를 열고 방과 후 돌봄교실을 운영한다. 인근에 위치한 청계천에서 생태교육을 하고, 안 입는 청바지 등을 가져와 멋지게 가방이나 앞치마를 만들어 가져간다. 미술을 전공한 정미라 대표가 애정하는 수공예 공방에는 패션 업사이클링을 할 수 있는 온갖 도구와 재료들이 가득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 팬데믹 때는 인근 공장에서 요청하는 입체 마스크를 직접 재단하여 밤새 작업하여 공급하기도 했다. 그동안 인원이 더 많을 때도 있었으나 현재는 정미라, 명재숙 두 명의 여성 대표가 역할을 나눠 운영하고 있고, 월 1만 원 회비를 내는 정회원 40~50명이 참여한다.
성동구의 공정무역 자치구 선언 이후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마련한 공정무역 활동가 양성과정에 참여하면서 어바웃엠의 공정무역 활동이 본격화됐다. 카페에서 공정무역 커피와 마스코바도 설탕, 코코넛 오일 등을 판매하고, 공정무역 체험 교실과 네트워크 파티 등을 통해 아이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공정무역을 배운다. 2023년 공정무역커뮤니티 인증을 받은 이후, 정 대표는 단순히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때문에 생각처럼 판매가 늘지 않는 상황이지만, 더 많은 공정무역 재료를 음료와 베이커리에 사용하고 제품으로도 만들고 싶은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카페 인근에는 마장 축산시장과 관련 부자재 창고 등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어 일반적인 의미에서 매력적인 장소로 볼 순 없다. 그럼에도 회원들과 주민들의 플랫폼인 못나숲 덕분에 이사 가지 않고 살게 됐다는 얘길 듣는다. 성동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차문희 센터장은, 못나숲이 마장동의 품격을 확 높여줬다고 할 만큼 엄청난 기여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속가능한 식문화의 연결, 비건프렌들리 브런치 카페 '리프레쉬먼트'
쉬면서 심신의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곳. 브런치 카페 리프레쉬먼트가 자신의 SNS에 소개한 내용이다. 카페는 최신 유행의 번잡한 성수동 대로변에서 살짝 뒤쪽으로 들어간 골목 아파트 단지 상가 1층에 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주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점심 먹을 곳을 찾아 들어온다. 비빔밥, 고사리 파스타, 샌드위치에 공정무역 커피를 주문한다. 방문자들의 후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추천하는 글들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또한 모든 메뉴를 비건으로 주문할 수 있어 채식을 선호하는 20~30대들에게 좋은 선택지다.
카페를 운영하는 김지열 대표는 20년 차 전문 셰프다. 대학에서의 전공, 군대 취사병 복무, 미국 대형 호텔, 호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거쳐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뉴욕 CIA를 마쳤다. 한때는 그냥 유명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를 꿈꾼 적도 있지만, 배우고 경험하는 다양한 과정을 거치며 식문화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일과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바람직한 식문화를 위해서는 좋은 식재료, 그것을 재배하는 농부들, 자연환경으로 이어지는 연결이 중요하다고 본다.
성수동에 브런치 카페를 내면서 김대표는 지나치게 단기적인 유행과 소비적인 우리나라 식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하길 원한다. 1~2년 크게 인기 얻고 사라지는 음식점이 아니라 10년, 20년 오래도록 매일 먹어도 부담없는 가격대의 일상식, 그러면서도 좋은 재료와 미식의 요소를 고려한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 한다. 또한 이웃하고 있는 라멘집, 파스타집, 꽃집, 그리고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 로컬 커뮤니티와의 공생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다양한 참여기회를 모색한다.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김대표의 이러한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개발도상국의 농부들로부터 공정무역 커피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노고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동참하는 의미"인 것이다. 리프레쉬먼트는 커피 전문업체에서 콜롬비아, 브라질, 에티오피아를 블렌딩한 공정무역 커피를 공급받아 사용한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내용이 소개되면서 현재는 성동구 공정무역협의회에도 참여하고, 예비 공정무역커뮤니티로서 인증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후추, 소금, 설탕, 계피 등 카페에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을 공정무역 재료로 바꾸고, 가게 안에 '공정무역커뮤니티' 팻말이 걸려있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출처: 라이프인(https://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9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