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화장실
  • 엘리베이터
  • 장애인전용주차장
  • 휠체어리프트
  • 휠체어대여소
  • 이용가능시설
  • 경사로
  • 관광안내소
  • 숙박시설
  • 음식점
  • 입식테이블
  • 장애인객실
여행후기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북 괴산 연풍성지 작성일 : 2016-09-23 13:58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96 첨부파일 : 1개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북 괴산 연풍성지

 

聖地 에운 ‘십자가의 길’엔 200년前 박해 흔적이…

 

 

 

연풍성지 내 성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기념 성당. 연풍은 19세기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의 피난처였고 동시에 처형장이었다.
반석과 다섯 성인상. 병인박해 때 보령 영보리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의 모습이다.
사형 집행에 사용되었던 형구돌. 1964년 연풍성지에서 발견되었다.
너른 대지에 8.5m 높이 십자가상이 서있다. 사형장, 도살장이라 불린 곳으로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충북문화재 자료 제13호인 조선시대 향청. 일제강점기 헌병대 및 주재소, 광복 후엔 연풍지서를 거쳐 공소로 사용되었다.

한국천주교 103성인에 속하는 황석두 루카의 동상.

 

 

연풍(延豊). 그 뜻은 차치하고, 그 과거도 미뤄 두고, 이 이름을 부를 때면 언제나 감미로운 바람이 불었다. 이러한 단순하고 단조로운 연상이 마침내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다.

괴산군 연풍면 소재지에 위치한 삼풍리. 나지막한 건물들이 상가를 이루고 있다. 마치 계획도시처럼 반듯하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풍초등학교 앞에서 잠시 귀를 기울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종소리라도 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긴 담벼락의 끄트머리에 열린 문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담벼락의 저쪽 끄트머리에 우뚝 자리한 성당을 정면으로 마주본다. 너른 땅의 중앙은 비어 있고 햇살만 가득하다. 19세기 천주교 박해 때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한다. 지금 이 땅은 성역화되어 있다. 연풍 성지다.

19세기 천주교인들 피난처이자 처형장
예배소인 팔작지붕 향청건물과 함께
聖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성당 자리
사형도구였던 도넛모양 ‘형구돌’ 눈길

◆피난처이자 처형처, 연풍성지

성지 안내문에는 연풍을 ‘신앙의 길목이요, 교차로’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풍은 1914년 괴산군에 통합되기 전까지 독립된 현(縣)이었고, 아래로 이화령과 문경새재를 통해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이곳 연풍면은 그 중심이었다. 현의 중심이라 해도 당시 연풍은 모진 골짜기였던 모양이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교인들은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어 갔는데 연풍도 그런 곳이었다. 박해가 더욱 심해진 1866년 병인년에는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 은거하다 처형당했다. 그들이 처형된 장소가 지금의 연풍 성지다.

입구에서 100m 정도의 거리에 성당이 있다. 단순하고 간결하고 검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무겁게 느껴진다. 무겁다는 느낌은 연풍이라는 이름과 달리 성지라는 장소에 감히 발을 들인 비신자의 긴장 또는 억압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땅은 과거적이고 그 위에 구축된 현재는 미래를 담보로 한 일종의 강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곧장 성당으로 향하는 대신 성지 경역의 가장자리로 난 십자가의 길을 따라 에두르기로 한다. 방문객의 예의라 하는 것이 편하겠다.

작은 연못을 지나고, 침침한 나무 그늘 속에 하얀 십자가처럼 두 팔을 벌린 예수 그리스도 상을 지나 곧 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서 있는 다섯 사람과 마주친다. 병인년 박해 때 보령 영보리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오메르트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장두기 등 다섯 성인의 모습이다. 이들 중 황석두는 1984년 5월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 순교 성인 103인에 속하게 된 인물로 그의 고향이 이곳 연풍이다. 그들이 딛고 서있는 바위는 압송 길에 쉬어간 반석이라 한다. 그들 뒤로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이 있고 그 너머로 팔작지붕의 야무진 곡선이 보인다.

◆향청과 형구돌

팔작지붕의 한옥 건물은 숙종 때인 1691년에 처음 지어진 연풍향청(鄕廳)이다. 향청은 조선시대 지방관의 행정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과 지방 양반 세력 간 상호 견제와 협력의 산물로 생긴 관아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연풍 향청은 일제 강점기 동안 헌병대 및 주재소로 사용되었고, 광복 후에는 연풍지서로 쓰였다고 한다.

향청 건물은 1963년 천주교에서 매입해 연풍공소가 되었다. 용도에 따라 내부 구조가 많이 변형된 것을 1995년에 원형을 살려 복원했다. 지금도 예배소로 사용되는 듯 향청 마루에 ‘천주교 전례가 거행되는 장소’라는 푯말이 붙어 있고 아래 마당에는 키 낮은 나무 의자들이 반드르르한 얼굴로 줄지어 있다.

향청을 나와 다시 십자가의 길을 따라 조금 가면 도넛 모양의 돌을 볼 수 있다. 사형 집행을 쉽게 하도록 고안된 형구돌이라 한다. 형구돌은 연풍 공소가 개설된 이듬해 논과 집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올가미처럼 된 밧줄을 사람의 목에 걸고 돌 가운데의 구멍에 통과시킨 후 죽을 때까지 잡아당겼다고 전한다. 죽는 이에게도 죽이는 이에게도 무자비한 사형도구였다. 만져보고 싶지 않은 돌이다. 형구돌 근처에 황석두의 무덤이 자리한다.

◆도살장과 200주년 기념 성당

십자가의 길이 끝날 즈음 짧고 환상적인 수목의 터널이 성당을 향해 어두운 초록으로 이어져 있다. 길바닥은 철도 침목 모양의 나무를 이어 붙여 걸음이 고요하다. 터널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십자가상이 보인다. 왼쪽에는 순교현양비(殉敎顯楊碑)가 서 있고 약간 떨어진 오른쪽에는 황석두의 입상이 있다. 이곳은 사형장, 옥터, 또는 도살장이라고 부른다. 죄인을 처형했던 장소다. 연풍 성지의 역사 소개를 보면 1977년 ‘도살장터’를 매입했다고 쓰여 있다. 하 많은 표현 중 ‘도살장’이란 단어가 이어져 온 것이라면, 사람들의 눈과 기억 속에 사형 집행은 ‘도살’이었을 것이다.

도살장과 성당 사이에 놓인 또 하나의 형구돌을 지나 성당으로 오른다. 성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기념 성당. 신자들의 벽돌봉헌과 4년간의 모금으로 2014년에 완공되었다. 대성당과 소성당이 주랑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작은 중정이 있다. 중정에는 마리아 상이 대성당 쪽을 향해 서 있다. 가까이에서 보는 성당은 처음 멀리서 보았던 인상과 다르다. 간결함과 검박함은 그대로지만 보다 가볍다. 마음을 밝히는 가벼움, 순수한 앙천의 가벼움이다. 거기에 멋 부리지 않은 듯 멋 부린 조심스럽고 세심한 단장이 어여쁘다.

성당 앞에 서면 성지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모든 것을 최소화했다는 인상이 깊다. 성역 중앙의 빈 공간만이 최대에 할애되어 있고 그것은 완전히 옳다.

황석두는 과거시험을 보러 상경하던 중 한 주막에서 천주교인을 만났다. 부친의 반대에도 3년 동안 벙어리 행세를 하며 교리서를 탐독했고, 신부가 되기 위해 부인과 별거도 했지만 신부 서품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운명을 위해 모든 것을 다했다. 이곳에서 죽은 많은 이도 그러했다. 그들이 운명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할 때, 운명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 저 공간을 비운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움은 기억을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200년이나 늦었지만, 하늘은 머니까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방면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방향으로 간다. 연풍IC로 나가 연풍면소재지로 가면 바로 찾을 수 있다. 개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동절기)다. 성지 담벼락을 따라 연풍 현감을 지냈던 김홍도의 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형물이나 아트타일로 설치된 그의 대표작을 볼 수 있다. 연풍에 들어서면 ‘2일, 7일 연풍시장에 와 주세요’라는 현수막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연풍은 2일과 7일마다 5일장이 열린다. 장날 연풍 행은 일석이조겠다.

목록